
지난 9일 동해에서 속초 태백을 넘어 정성 기운을 다녀왔다. 정선군 양양면려양 5리에 위치한 골지천(음수)과 송천(양수)이 합류해 조양천을 이루는 곳에서 북한강 상류에서 옛날 뗏목을 띄워 목재를 옮겼다며 정선알리와 가사가 나왔다는 절경의 하나로 꼽혔다.
믿지 않아도 내 말인지 확인합니다. 로마 2:2에 있습니다. 이것을 증명해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의 아들인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대변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도록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이 사도들의 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죄를 용서해 주는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세계에 누가 이것이 떨어질까요? 빠지고 싶니?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습니다. 전세계에서는 지금 현재 있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뿐인지, 창세 전부터 있는 영혼이므로, 세상이 창조된 후의 태어난 영혼이나 창세전의 영혼이나, 또 이 지구가 수억만년 계속하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곧 끝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수억 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때까지도 마지막으로 태어난 영혼까지 모두 들어가면 무엇을 보고 있는가? 디모데 첫째 1:9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로서의 것입니다. 이 은혜는 천지 창조 전에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받았습니다.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세 전의 영혼이나 창세 후의 영혼이나 또 영원의 끝에 태어난 영혼이나, 모두 구원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수천 개의 죄만 끝이 있습니다. 죄의 끝이 있어야 하는 죄도 수천대 가서는 안 되는 죄는 끝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다 샀으니 그때 끝이다. 끝입니다. 그런데 현재 짐을 버리고 예수님이 다 죄를 용서해 주었는데 왜 죄를 짊어지는가. 그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전부 죽어 버렸다. 버릇 지루하니까 탄생 예수의 탄생은 그것을 깨닫는다. 그 버릇을 고쳐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에 잘못된 질병의 기적이 있습니다. 다른 기적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4 복음에 전부 있지만, 요한복음에 또 하나가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이가 있습니다. 보리 떡의 다섯 덩어리 어떻게 사용합니까? 흑토의 옆에 악마 그럼 인간의 오관이 있는데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촉각은 무엇인가? 고린도 7:1. 촉각을 기억하십니까? 보지 않고 남자가 여자를 만지지 않는 것이 좋지만, 좋지만, 그렇게 음행이 심하다고 지도자를 두어야 한다. 그 부부 부부간도 그렇습니다. 영혼을 돕는 부부 사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기를 돕는 부부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아담 때부터니까, 인제는 처녀들은 남자라는 말이 될까요? 참 지도자를 만나야 한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성경은 남녀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믿음의 강약으로 보라. 강한 사람은 남자입니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자라고 구약성경에 아이들의 하나님의 딸들이었다. 예루살렘의 처녀들이었습니다. 처녀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남자를 처녀라는 말은 혼인하기 전에 처녀다. 소년도 아이입니다. 아이는 5개의 덩어리가 있었다. 유령에 얽매이지 않는 떡이다. 두 머리, 두 꼬리는 무엇입니까? 남녀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의 자시키라면 교미시키면 교미오미는 사시범 아래에 모모하면 영혼이 죽는다는 것이다. 영혼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기적을 보통 5천명이 먹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고기가 올 때 평양을 교육시켜라. 청년들도 그런 판에 그 사람들도 청년 일행이 갔습니다. 갔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자신들보다 교육을 능숙하게 하고 있습니다만, 뭐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것인가이므로, 나에게 가면 내가 간다는 것을 알고, 당신의 손이 없어? 눈이 없어? 맞습니다. 아니, 내가 가겠다고 언제 가족 중에 청년이 왔기 때문에, 나는 조금 이야기해 주면, 그 후는 기다리고 있었지만, 거기에 조금 오면 꽤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음란한 사무실에 서둘러 있다. 캠캠이지만 지금은 여기
참된 사람은 디모데 둘째 2:5을 읽는다. 참사랑 예수님은 참사랑입니다. 그처럼 살아가는 것이 동방박사의 세분도 돌아가 그대로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또 사도행전 18장에 아볼로도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고 또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생활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후의 생활은 은혜의 생활이다. 완전히 생활태도가 바뀐다. 말씀을 들으면 생활이 바뀝니다. 역사관이 바뀌어 버립니다. 말씀을 깨닫으면 지옥에 갔던 길을 회개하고 되돌아 버려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천국에 가서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유다에 순종하면 세속으로 죽는다. 예수님은 유다의 진리를 팔고 성령을 바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유다의 결과는 유다의 영혼이 아니며 유다 앞에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 앞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도들 안에 유다가 있어야 합니다. 배울 수 없습니다. 베드로만이면 안됩니다. 34절 다시 보면,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 알타반이 쓰러졌습니까? 기와장이 머리를 부러 버리고 쓰러졌습니다. 쓰러져서 영혼이 깨어났어요. 살아남았다. 아까 평안에 시메온이 말합니다. 이 종은 평안에 눈을 감았다. 알타반입니다. 알타반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은 사람이 모두 알타반입니다. 찾는다, 찾는다 70이 되게 하고 예수님을 찾았고, 성모는 12살 때 예수님을 찾았을 때 하루의 길인데 잃어버려 찾는 데 며칠이 걸렸다. 3일 왜 일로를 3일 걸립니다. 아무리 찾아보는데 가야 할 일을 모두 찾아보세요. 가족과 가까운 예수님과 친한 데나를 찾아보세요. 그러니까 날짜가 걸렸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3일은 예수의 부활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 정신이 깨어날 때 예수님을 만난다. 나 나름대로 방법으로 찾았습니다. 여기도 가서 지금 같다면 현재 같다면 히가시코겐에도 가서 신앙촌에도 가서 또 어디 가톨릭 집단에 수도원에도 가봐 그런 일이 됐어. 그래도 만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습니까? 마음 속에 계시는데 매우 가까운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걸립니다. 96세까지 찾아봐도 아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앞에 지금 여기에 성경을 보고, 닫고 흥분한다. 그럼 어디를 볼까요? 이사야서 8:14, 그가 거룩한 피하는 곳이 되게 하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설치된 돌이 걸리는 반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지면 쓰러지면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어렵다고 떨어지니까 그렇게 그렇게 부자의 청년은 어떻게 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한 선생님이기 때문에 뭐라고 했습니까? "왜 나를 선량하게 만드는가?" 그 말은 무엇입니까? "너도 사람 가운데 하나로 본 거야." 그랬어. 나도 사람 중 하나로 본 거야. 나도 좋은 분은 하나님 뿐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인데도 선한 사람의 공자나 맹자나 그런 사람 중 하나임을 알고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믿었다면 순종하겠지만 선한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은 할 수 없습니다. 지혜가 부족한 전부 버리면 저녁부터 굶주리겠지만, 어떻게 할지 지혜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만 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나은 구원을 얻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서 물었는데, 팔아달라고 그렇게, 아이는 그런 소리가 신경이 쓰이네요. 가책은 받고 마태복음 21장 44절,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 조각이 튀어나와 그 돌 아래에 깔린 사람은 가루가 될 것입니다.” 42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あなたたちは聖書で「家を建てる人々が捨てた石が角の頭になった。主が言う言葉です。私たちにとっては驚くべきことです。と言ったことを読んだことがないのか?家の人が捨てた石は何ですか?宗教指導者たちが律法に追い込まれ、律法にはかかる。自分が神の子であればこれではない。宗教指導者たちが捨てた石はイエスという言葉だ。捨てられた石が角に頭石になった。非常に要する石になった。人格建設には基礎となった。真の基礎よりも基礎となって主がなされることなので、私たちには驚くほど見えるという言葉を読んだことがないのでしょうか。よく聞いてください。お前らは神様の国を奪われるだろうし、奪われ、自分が今考える国はすべて奪われてしまいます。自分が望む天国は奪われます。何が天国、これだけすれば私が永遠によく生きる。これ그렇다면 영원히 잘 될 것이라고 땅의 것이고, 도조를 자주 하는 백성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나오는지 봐 주세요.그래도,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산 조각이 날 것이며, 그 돌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어 버립니다.이것은 썩은 돌이다 쌀을 부르고 맛있으면 쌀이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나요? 이것은 가루로 굉장히 멋지네 라고 했는데, 잡힐 수 있을까요? 저는 요한 복음서에 내려갑니다. 보는 사람은 맹목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보게 해 심판에 왔다. 그렇게 심판에 그게 뭐야? 지금 성경이 보이지 않으므로 계시를 받으십시오. 나는 보기 때문에 계시를 받을 수 없다. 보면 알면 그렇게 된다고 나는 알았다. 그럼 이제 쓰러졌다. 보이지 않는다. 바리새인은 보겠다고 하기 때문에 소경이다. 보는 자체가 소경이다. 예수님을 볼 수 없으므로 예수님의 성품을 모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침례 요한의 성품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를 아십니까? 가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누구입니까? 갔으니까 가서 대답하지 않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는 황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갔다. 내 믿음 내 삶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5장 6절 7절, 예수께서는 그가 거기에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한 아주 오래된 병자임을 알고 그분에게 좋은 것을 원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아픈 사람은 선생님이지만, 저에게는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라고 대답했다. 무슨 말을? 무슨 뜻입니까? 로마서 7:24:2023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매우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이군요. 그렇게 끝났을 때 예수님이 그 영혼을 방문하십시오. 영혼들은 많이 있지만, 38년이니까 일수도 많이 걸렸습니다만, 100년이 걸려도 또 자신의 방법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어쨌든 인제 다른 어떤 힘도 되지 않고, 자신의 힘도 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는 상태 위에서 구원의 손이 내려가지 않으면 인류 인간계에서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라고 절망, 그런 때 구원의 손질이군요. 물 위에 걸을 때도 나도 걸어 가라. 네. 그래, 조금 걸어 가서 바람이 무서워서 빠집니다. 나를 살려라.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럴 때 구원의 손이 왜 신앙이 그렇게 약한가. 그 죄를 그렇게 무서워? 나에게 맡기면 좋지만 네가 하겠으니까 그렇게, 바람은 죄입니다. 죄, 죄의 세력이다. 물 위에 걸었다고 하면, 그 때는 물 위에 걸었다고 합니다만, 지금 그런 기적을 혼자 없네요. 뭐 보트인가 그런 거 타고 있는데, 다리로 걸어가고 있지 않았으니까 죄를 빠져 세상을 보내는 그 말이에요. 공산주의의 또 다른 3장입니다. 3:29, 신부를 맞이하는 사람은 신랑입니다. 신랑이 신부 옆에 있지만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렇게 가득하다. 그는 더 커지고 나는 작아야합니다. 그는 흥분하고 나는 죽여야 한다. 지금 율법은 전부 했습니다. 자신의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므로 율법은 끝났습니다. 율법 끝에 세례 요한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자격만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전부 맡겼습니다. 제자들에게 순종하십시오. 당신이 가서 직접보고 듣고, 당신이 증거하는 사람들과 나는 지금, 당신이 거기까지 가면, 내 일을 모두했습니다. 나는 쇠퇴해야 한다. 가야합니다. 예수의 복음은 전천하에 퍼져야 합니다. 그거네요.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1:23, 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걸린 것은 유대인들에게 귀를 기울이듯이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그리스인 없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지이며,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것을 23절의 개역으로 본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고 유대인에게는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방인에게는 미련. 그 구원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보고 구주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원받는 사람은 구주로 보이므로 31절입니다.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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